3️⃣ 작가 시리즈: 화백 이우환 – 3편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철학적 예술가로 불리는 이우환. 그의 작업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작품을 넘어, 사유와 성찰의 깊이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우환 작품의 철학적 미학과 그 속에 숨겨진 관계와 여백의 힘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비움과 만남의 미학 ‘모노하’

모노하(もの派)는 일본에서 서구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비판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사물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인간의 방향성을 최소화하는 예술 운동이었죠. 당시 일본은 급격화된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경험하며 물질적 풍요를 누리던 시기였지만, 동시에 많은 대학생들이 과학 기술과 진보 이데올로기에 대한 맹신과 환경파괴에 강한 문제의식을 품고 있기도 했습니다.
당시 서구를 발전 기준으로 삼아온 일본 사회는 ‘전통적인 동양’ vs ‘현대적인 서양’이라는 고착화된 이분법 속에 있었고, 이러한 흐름에 맞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예술적 태도를 되묻는 젊은 세대가 등장했습니다. 이우환 역시 주관적 표현을 최소화하며, 내면세계의 본질을 그대로 수용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만남의 미학’을 강조하며 서로 다른 존재들이 상호 의존적 관계를 맺는 ‘만남의 장’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돌과 철, 과거와 현재의 대화

이우환의 작품, 특히 ‘관계항’ 시리즈는 물질 본연의 시간성과 물성의 조화를 탐구합니다. 돌과 철, 이는 각각 자연과 인공,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 재료이죠. 겉보기에는 특별한 것 없는 이 재료들을 통해, 그는 오히려 그 ‘비 특별함’ 속에 담긴 고유한 물성, 그리고 두 물질 사이의 긴장감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그는 인간보다 오래된 시간의 흔적을 품은 ‘돌’과, 그 돌에서 추출된 금속인 ‘철’을 명확히 대조하며, 이들이 서로 소통하는 방식을 탐구했습니다. 이처럼 이우환은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 재료들을 통해 두 세계 간의 조화를 시도했습니다. 전시마다 공간 구조에 따라 재료의 배치에 깊이 고민하고 실험하며, 물질 자체가 지닌 존재감을 최대한으로 극대화하려 노력했죠.
여백의 철학, 비움 속의 울림

출처: 교보문고
‘여백’은 일반적으로 ‘남겨진 공간’을 뜻하죠. 그러나 이우환에게 여백은 단순히 비워진 자리가 아니라, ‘사물과 관람자, 공간의 조화’입니다. 그는 종을 칠 때 종, 사람, 그리고 주변 공간이 어우러져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내듯, 사물과 공간이 함께 조율되어 만들어내는 울림을 여백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우환은 ‘조응’ 시리즈를 통해 이러한 철학을 더 구체화했는데요. 그는 캔버스 한가운데 점을 찍고, 그 점이 주변의 공간과 동적인 긴장을 형성하도록 오랜 시간 동안 실험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는 “누군가는 점 하나라고 볼 수 있지만, 텅 빈 공간과 점 하나가 맞물려야 하고, 상호작용으로 인한 힘이 나와야 해요. 그런 힘이 나오기 위해선 오랜 기간의 고민과 노력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며, 작품이 단순한 결과물이 아닌 깊은 성찰의 산물임을 강조했어요.
이우환이 담고자 했던 철학

이우환은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를 단순히 ‘일방적으로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관람자가 서로 마주 보는 것’, 즉 하나의 ‘대화’라고 말합니다. 이는 근대 미술의 시각 중심적 태도에서 벗어나, 현대 미술이 지향하는 ‘소통의 예술’로 나아가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여백과 관계, 그리고 만남. 이우환의 작품은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철학적 깊이를 우리에게 전하며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사물 간의 대화와 여백 속의 울림으로 이우환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죠. 그의 철학적 예술 세계를 더 탐구하는 여정을 함께 걸어 볼까요?
